지란지교소프트 오치영 (67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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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홈운영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4,278회 작성일 2004-12-17 13:22본문
"소프트웨어 시장이요? 어렵지요. 그러나 언제 쉬운 적이 있었습니까?"
목수가 망치 탓을 하지 않듯이 오치영(36) 대표는 주변 여건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녹록치 않은 국내 시장을 10년간 숨가쁘게 달려오면서 얻은 깨달음이다. 어려울 때는 좋을 때를, 잘 나갈 때는 처질 때를 생각하면서 그렇게 한 발 한 발 내디딜 뿐이다.
오 대표는 지난 94년 9월 PC통신 프로그램 '잠들지 않는 시간'으로 벤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안철수연구소보다 1년 앞서는 '벤처 1세대'로 IT 붐을 타고 문을 연 최근 벤처들에게는 까마득한 고참이다. 돌이켜보면 참 많은 이들이 국내 소프트웨어 시장을 함께 이끌었다.
"예전에는 소프트웨어 벤처 연합회를 통해 쟁쟁한 실력자들을 많이 만났는데, 아직까지 살아남은 회사가 많지 않습니다. 가끔씩 PC 통신 시절의 '참소모'(참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모임) 멤버들이 그립기도 합니다. 한창 때는 소프트웨어 벤처 모임이 7, 80명에 이를 정도로 대단했는데…."
척박한 시장을 견디지 못해 하나 둘 떠나고 지금은 안연구소, 한컴 등이 겨우 자존심을 지킬 뿐이다. 술 한 잔 건네며 과거를 회상할 이웃조차 만나기 힘든 요즘, 불타오르는 열정으로 IT 시장을 개척했던 그때 그 시절이 더욱 그리워진다.
그래서일까. 고된 환경에서도 지란지교소프트가 정통 소프트웨어 업체로 10년을 이어온 게 오 대표는 더없이 자랑스럽다. 물론 경기 침체로 살을 에는 듯한 고통을 겪지 않을 수는 없었다.
"사업을 하면서 꾸준히 성장했습니다. 2000년, 2001년에는 덩치가 제법 커졌고 사업 아이템도 여럿 늘었습니다. 코스닥도 꿈꿀 수 있게 되었지요. 그러다 경기가 악화되면서 코스닥 상장도 실패했고 자금 마련도 어려워졌습니다. 덩치는 큰데 내실이 없어진 것이죠."
하는 수 없이 2003년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80명이던 직원을 50명으로 줄이면서 가장 자신 있는 사업만 남겨놓고 가지치기를 했다. 지금은 스팸 메일을 막는 '스팸스나이퍼', 기업용 메신저인 '쿨메신저', 업무용 웹 하드인 '오피스하드'가 지란지교시스템을 든든히 떠받들고 있다. 이 중에서 수익이 가장 큰 것은 스팸스나이퍼다.
"2002년 이것을 내놓았을 때는 세계적으로 스팸 메일에 대한 문제가 이슈화되기 시작했지만 쉽게 낙관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스팸 차단 프로그램이 없었기 때문에 소비 마인드가 자리를 잡지 않은 탓이지요."
15명의 전문가가 1년간 달라붙어 내놓은 국내 최초의 스팸 메일 차단 프로그램 '스팸스나이퍼'는 그러나 첫해 수익이 2억원 정도에 그쳤다. 예상대로 소비자들의 인식 부족이 원인이었다. 이는 끊임없는 설득과 설명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와 기업, 관공서를 찾아다니며 제품을 알렸습니다. 직원들이 스팸 때문에 일을 제대로 못 하는데, 이것이 얼마나 큰 낭비냐. 고급 인력들이 허튼 데 시간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더니 겨우 먹히더군요. 작년에는 수익이 20억원으로 재작년보다 10배 이상 뛰었습니다. 올해는 30억원을 무난히 벌어들일 것입니다."
남보다 한발 앞서 시작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스팸 메일은 큰 골칫거리다. 리서치기업인 라디카티(Radicati)의 작년 자료에 따르면 스팸 차단 시장은 2003년에 6억5300만달러에서 2007년에는 24억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좀 이르긴 했지만 스팸 차단 시장에 뛰어든 오 대표의 판단은 맞아떨어졌다. 스팸 차단 제품이 20여개로 늘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지만 스팸스나이퍼가 시장 점유율 30%대로 선두를 달리는 것은 남보다 앞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스팸스나이퍼가 '최초'인 탓에 경쟁 업체들의 모델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실력 차이가 줄어들겠죠. 하지만 백신을 보세요. 성능 차이가 엄청나서 1, 2위가 가려지고 수익 차이가 큰가요? 기능도 기능이지만 그 이외의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는 얘기죠. 이를테면, 브랜드 파워와 회사 이미지, 미래에 대한 신뢰 등입니다."
엔지니어들은 제품을 만들 때 '세계 최고'에 매달리기 마련이다. 이공학도인 오 대표도 '오로지 기술'에만 파묻힌 때가 있었다. 그 바람에 정작 소비자들을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했다. '최고의 성능'을 좇다보면 개발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내는 게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 첫걸음이다.
개발자에서 경영인으로 거듭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이 해답을 찾아가는 오 대표. 그는 충남대학교에서 전산학을 전공했다. 1, 2학년 때는 여행을 다니고 기타를 치면서 자유를 맘껏 누렸지만 군대를 다녀온 3학년부터 미친 듯이 공부에 매달렸다. 덕분에 '삼성 소프트웨어 멤버십'에 뽑힐 수 있었다.
"삼성전자가 컴퓨터 실력이 뛰어난 학생들을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대전에서 20명 정도가 뽑혔는데 사무실에 컴퓨터까지 마련해주면서 맘껏 공부하라고 하더군요. 최신 컴퓨터를 쓸 수 있는 데다 용돈까지 주니 정말 자유롭게 탐구할 수 있었습니다. 창업 멤버들도 거기서 만났습니다."
4학년 졸업반이 되자 오 대표는 대학원을 갈 것인지, 취직을 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결국 창업으로 가닥을 잡았다. 멤버십 소속이어서 삼성전자에 취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내 일'을 갖고 싶었다.
4학년 2학기에 창업멤버를 모으고 '이름 없는 들꽃과 향기로운 난초의 사귐'이라는 한자성어 '지란지교'(芝蘭之交)를 회사 이름으로 삼았다. 그리고 첫 아이템으로 정한 게 '잠들지 않은 시간'이다.
"지금 같아서는 4개월이면 충분했을 텐데 그때는 1년이나 걸렸습니다. 필요한 기능을 빌려 오거나 복사하면 좀더 수월했을 텐데 요령도 없고 고지식했던 것이지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손으로 다 만들어야 직성이 풀렸나 봅니다."
비타민과 아스피린?
4학년 2학기였으니 수업이 많지 않아 홀가분한 마음으로 매달릴 수 있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열정만큼은 활활 타올랐다. 고생한 보람은 컸다. '잠들지 않은 시간'은 나오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도스용이 전부였던 시장에 혜성처럼 나타난 이 최초의 윈도용 통신 프로그램은 95년부터 최고의 해를 보냈다.
"그러나 수익은 없었습니다. 프로그램만 잘 만들면 배를 곯지 않을 줄 알았는데…. 혼란스러웠습니다. 잠들지 않은 시간을 계속 만들 것이냐, 말 것이냐. 아니, 소프트웨어 사업을 계속할 것인가. 그러나 이제 시작이었습니다. 끝을 보더라도 좀더 해본 다음에 결정을 내리기로 했습니다."
당장은 회사를 꾸려가야 하니 하이텔이나 천리안에서 프로그램 용역을 맡았다. 고생은 고생대로 했지만 살림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때마침 카이스트(?)에서 SI 프로젝트를 따내면서 겨우 숨통이 틔었다. '잠들지 않은 시간'을 만드느라 궁핍해진 살림은 1, 2억원이라는 거액을 손에 쥐면서 한결 나아졌다. 아이러니였다. 회사 살림을 축낸 '잠들지 않은 시간'이 프로젝트를 따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지란지교소프트라는 이름은 몰랐지만 '잠들지 않은 시간'이라는 유명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회사니 믿을 수 있다면서 프로젝트를 맡기더군요. 우리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던 것이죠. 이때부터 회사는 차츰 모양새를 갖춰가기 시작했습니다."
잠들지 않은 시간은 그렇게 몇 년 전성기를 누리다가 인터넷이 퍼지면서 더 이상 생명을 이어갈 수 없게 되었다. 오 대표는 새로운 간판이 필요했다. 1998년 금고에 귀중품을 넣어두듯이 중요한 정보를 보관하는 '파일세이프'를 선보였다.
'잠들지 않은 시간'은 네티즌들이 알아줬지만 파일세이프는 IT 전문가들이 인정해줬다. '보안'을 상품화한 아이디어를 높이 산 것이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썰렁했다. 오 대표는 그 이유를 아스피린과 비타민에 비유했다.
"비타민은 몸을 건강하게 지켜줍니다. 하지만 아스피린처럼 머리가 아플 때 먹으면 바로 효과를 보거나 하지 않습니다. 보안이 중요하다는 것은 개념으로 알 뿐이지 돈을 주고 살만큼 절박하지 않았던 것이죠."
세계 100대 기업을 꿈꾸며
99년 국내 최초의 기업용 메신저 '쿨메신저'를 선보였을 때도 비슷한 좌절을 맛봤다. 메신저의 필요성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데다 MSN이나 야후 등 공짜 메신저가 있어서 소비자들은 굳이 돈을 쓸 이유가 없었다. 보안이 좋고 관리가 쉽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먹히지 않았다. 파일세이프와 마찬가지로 시장이 충분히 성숙되지 않았는데 너무 앞서 나왔던 탓이다.
파일세이프와 쿨메신저를 통해 오 대표는 아이디어와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시장을 움직이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비자들은 필요에 따라 오갈 뿐 억지로 잡아끈다고 따라오지 않는다. 시장의 오묘한 이치를 깨달아가는 것은 그에게 또 다른 즐거움이다.
회사가 커지면서 오 대표는 개발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처음에는 개발과 영업을 함께 했지만 이제는 회사의 큰 그림을 그리는 데 매달려 있다.
그는 우리나라 벤처의 성장 과정을 3단계로 꼽는다. 밥 먹고사는 게 1단계라면 국내에서 점유율을 웬만큼 차지하면서 선두 그룹에 끼는 게 2단계다. 마지막 3단계는 해외 진출이다. 지란지교소프트는 2단계를 지나 이제 막 3단계에 들어설 채비를 마쳤다.
"우리나라는 어정쩡합니다. 대만처럼 내수 시장이 작으면 처음부터 글로벌 마케팅을 할 것이고, 미국이나 일본처럼 내수 시장이 크면 해외 진출을 고민하지 않아도 될 텐데……. 이도 저도 아니니 국내에서 시장 점유율 1위를 해도 해외 진출을 노리지 않으면 안 되는 고민에 빠집니다. 그러나 이런 태생적 한계를 되도록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내수 시장에서 충분히 워밍업을 한 다음에 해외 진출을 할 수 있잖아요."
그가 노리는 해외 진출의 1번지는 일본이다. 중국과 미국도 눈여겨봤지만 일본이 가장 나은 조건을 갖췄다. 경기가 빠르게 회복되는 중인데다 한류 열풍으로 한국 상품에 대한 호감도가 좋아서다.
100년 전통을 향해
일본 진출에 성공하면 중국과 미국 등으로 눈을 돌릴 계획이다. 궁극적으로는 2014년까지 세계 100대 소프트웨어 회사가 되는 게 꿈이다. 이를 위해서는 회사의 정체성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
스팸스나이퍼와 쿨메신저 등 지란지교소프트의 상품은 한결같이 '네트워크'와 '보안', '업무'라는 주제를 꿰고 있다. 하지만 초점이 흐리다는 지적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하면 운영체제, 인텔 하면 CPU가 떠오르듯 핵심 키워드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얘기다. 그는 생각이 좀 다르다.
"리니지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는 엔씨소프트가 그룹웨어로 시작했다는 것을 누가 알까요? 안철수연구소는 요즘 통합 보안 회사로 나아가려 하지만 백신에 대한 이미지가 워낙 강해 오히려 손해를 볼 때도 있습니다. 정체성이 너무 강한 게 꼭 좋다고 볼 수 없습니다. 유연하게 시장의 흐름을 따라가는 게 저의 전략입니다."
오 대표는 실패도 좌절도 모두 끌어안은 채 척박한 국내 시장에서 10년을 그렇게 달려왔다. 100년 전통의 뿌리 깊은 회사를 향해 이제 겨우 몇 발짝 떼었을 뿐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지만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 그에게 소프트웨어는 희망이기 때문이다.
ⓒ2004 월간 PC사랑
목수가 망치 탓을 하지 않듯이 오치영(36) 대표는 주변 여건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녹록치 않은 국내 시장을 10년간 숨가쁘게 달려오면서 얻은 깨달음이다. 어려울 때는 좋을 때를, 잘 나갈 때는 처질 때를 생각하면서 그렇게 한 발 한 발 내디딜 뿐이다.
오 대표는 지난 94년 9월 PC통신 프로그램 '잠들지 않는 시간'으로 벤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안철수연구소보다 1년 앞서는 '벤처 1세대'로 IT 붐을 타고 문을 연 최근 벤처들에게는 까마득한 고참이다. 돌이켜보면 참 많은 이들이 국내 소프트웨어 시장을 함께 이끌었다.
"예전에는 소프트웨어 벤처 연합회를 통해 쟁쟁한 실력자들을 많이 만났는데, 아직까지 살아남은 회사가 많지 않습니다. 가끔씩 PC 통신 시절의 '참소모'(참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모임) 멤버들이 그립기도 합니다. 한창 때는 소프트웨어 벤처 모임이 7, 80명에 이를 정도로 대단했는데…."
척박한 시장을 견디지 못해 하나 둘 떠나고 지금은 안연구소, 한컴 등이 겨우 자존심을 지킬 뿐이다. 술 한 잔 건네며 과거를 회상할 이웃조차 만나기 힘든 요즘, 불타오르는 열정으로 IT 시장을 개척했던 그때 그 시절이 더욱 그리워진다.
그래서일까. 고된 환경에서도 지란지교소프트가 정통 소프트웨어 업체로 10년을 이어온 게 오 대표는 더없이 자랑스럽다. 물론 경기 침체로 살을 에는 듯한 고통을 겪지 않을 수는 없었다.
"사업을 하면서 꾸준히 성장했습니다. 2000년, 2001년에는 덩치가 제법 커졌고 사업 아이템도 여럿 늘었습니다. 코스닥도 꿈꿀 수 있게 되었지요. 그러다 경기가 악화되면서 코스닥 상장도 실패했고 자금 마련도 어려워졌습니다. 덩치는 큰데 내실이 없어진 것이죠."
하는 수 없이 2003년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80명이던 직원을 50명으로 줄이면서 가장 자신 있는 사업만 남겨놓고 가지치기를 했다. 지금은 스팸 메일을 막는 '스팸스나이퍼', 기업용 메신저인 '쿨메신저', 업무용 웹 하드인 '오피스하드'가 지란지교시스템을 든든히 떠받들고 있다. 이 중에서 수익이 가장 큰 것은 스팸스나이퍼다.
"2002년 이것을 내놓았을 때는 세계적으로 스팸 메일에 대한 문제가 이슈화되기 시작했지만 쉽게 낙관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스팸 차단 프로그램이 없었기 때문에 소비 마인드가 자리를 잡지 않은 탓이지요."
15명의 전문가가 1년간 달라붙어 내놓은 국내 최초의 스팸 메일 차단 프로그램 '스팸스나이퍼'는 그러나 첫해 수익이 2억원 정도에 그쳤다. 예상대로 소비자들의 인식 부족이 원인이었다. 이는 끊임없는 설득과 설명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와 기업, 관공서를 찾아다니며 제품을 알렸습니다. 직원들이 스팸 때문에 일을 제대로 못 하는데, 이것이 얼마나 큰 낭비냐. 고급 인력들이 허튼 데 시간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더니 겨우 먹히더군요. 작년에는 수익이 20억원으로 재작년보다 10배 이상 뛰었습니다. 올해는 30억원을 무난히 벌어들일 것입니다."
남보다 한발 앞서 시작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스팸 메일은 큰 골칫거리다. 리서치기업인 라디카티(Radicati)의 작년 자료에 따르면 스팸 차단 시장은 2003년에 6억5300만달러에서 2007년에는 24억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좀 이르긴 했지만 스팸 차단 시장에 뛰어든 오 대표의 판단은 맞아떨어졌다. 스팸 차단 제품이 20여개로 늘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지만 스팸스나이퍼가 시장 점유율 30%대로 선두를 달리는 것은 남보다 앞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스팸스나이퍼가 '최초'인 탓에 경쟁 업체들의 모델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실력 차이가 줄어들겠죠. 하지만 백신을 보세요. 성능 차이가 엄청나서 1, 2위가 가려지고 수익 차이가 큰가요? 기능도 기능이지만 그 이외의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는 얘기죠. 이를테면, 브랜드 파워와 회사 이미지, 미래에 대한 신뢰 등입니다."
엔지니어들은 제품을 만들 때 '세계 최고'에 매달리기 마련이다. 이공학도인 오 대표도 '오로지 기술'에만 파묻힌 때가 있었다. 그 바람에 정작 소비자들을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했다. '최고의 성능'을 좇다보면 개발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내는 게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 첫걸음이다.
개발자에서 경영인으로 거듭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이 해답을 찾아가는 오 대표. 그는 충남대학교에서 전산학을 전공했다. 1, 2학년 때는 여행을 다니고 기타를 치면서 자유를 맘껏 누렸지만 군대를 다녀온 3학년부터 미친 듯이 공부에 매달렸다. 덕분에 '삼성 소프트웨어 멤버십'에 뽑힐 수 있었다.
"삼성전자가 컴퓨터 실력이 뛰어난 학생들을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대전에서 20명 정도가 뽑혔는데 사무실에 컴퓨터까지 마련해주면서 맘껏 공부하라고 하더군요. 최신 컴퓨터를 쓸 수 있는 데다 용돈까지 주니 정말 자유롭게 탐구할 수 있었습니다. 창업 멤버들도 거기서 만났습니다."
4학년 졸업반이 되자 오 대표는 대학원을 갈 것인지, 취직을 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결국 창업으로 가닥을 잡았다. 멤버십 소속이어서 삼성전자에 취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내 일'을 갖고 싶었다.
4학년 2학기에 창업멤버를 모으고 '이름 없는 들꽃과 향기로운 난초의 사귐'이라는 한자성어 '지란지교'(芝蘭之交)를 회사 이름으로 삼았다. 그리고 첫 아이템으로 정한 게 '잠들지 않은 시간'이다.
"지금 같아서는 4개월이면 충분했을 텐데 그때는 1년이나 걸렸습니다. 필요한 기능을 빌려 오거나 복사하면 좀더 수월했을 텐데 요령도 없고 고지식했던 것이지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손으로 다 만들어야 직성이 풀렸나 봅니다."
비타민과 아스피린?
4학년 2학기였으니 수업이 많지 않아 홀가분한 마음으로 매달릴 수 있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열정만큼은 활활 타올랐다. 고생한 보람은 컸다. '잠들지 않은 시간'은 나오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도스용이 전부였던 시장에 혜성처럼 나타난 이 최초의 윈도용 통신 프로그램은 95년부터 최고의 해를 보냈다.
"그러나 수익은 없었습니다. 프로그램만 잘 만들면 배를 곯지 않을 줄 알았는데…. 혼란스러웠습니다. 잠들지 않은 시간을 계속 만들 것이냐, 말 것이냐. 아니, 소프트웨어 사업을 계속할 것인가. 그러나 이제 시작이었습니다. 끝을 보더라도 좀더 해본 다음에 결정을 내리기로 했습니다."
당장은 회사를 꾸려가야 하니 하이텔이나 천리안에서 프로그램 용역을 맡았다. 고생은 고생대로 했지만 살림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때마침 카이스트(?)에서 SI 프로젝트를 따내면서 겨우 숨통이 틔었다. '잠들지 않은 시간'을 만드느라 궁핍해진 살림은 1, 2억원이라는 거액을 손에 쥐면서 한결 나아졌다. 아이러니였다. 회사 살림을 축낸 '잠들지 않은 시간'이 프로젝트를 따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지란지교소프트라는 이름은 몰랐지만 '잠들지 않은 시간'이라는 유명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회사니 믿을 수 있다면서 프로젝트를 맡기더군요. 우리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던 것이죠. 이때부터 회사는 차츰 모양새를 갖춰가기 시작했습니다."
잠들지 않은 시간은 그렇게 몇 년 전성기를 누리다가 인터넷이 퍼지면서 더 이상 생명을 이어갈 수 없게 되었다. 오 대표는 새로운 간판이 필요했다. 1998년 금고에 귀중품을 넣어두듯이 중요한 정보를 보관하는 '파일세이프'를 선보였다.
'잠들지 않은 시간'은 네티즌들이 알아줬지만 파일세이프는 IT 전문가들이 인정해줬다. '보안'을 상품화한 아이디어를 높이 산 것이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썰렁했다. 오 대표는 그 이유를 아스피린과 비타민에 비유했다.
"비타민은 몸을 건강하게 지켜줍니다. 하지만 아스피린처럼 머리가 아플 때 먹으면 바로 효과를 보거나 하지 않습니다. 보안이 중요하다는 것은 개념으로 알 뿐이지 돈을 주고 살만큼 절박하지 않았던 것이죠."
세계 100대 기업을 꿈꾸며
99년 국내 최초의 기업용 메신저 '쿨메신저'를 선보였을 때도 비슷한 좌절을 맛봤다. 메신저의 필요성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데다 MSN이나 야후 등 공짜 메신저가 있어서 소비자들은 굳이 돈을 쓸 이유가 없었다. 보안이 좋고 관리가 쉽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먹히지 않았다. 파일세이프와 마찬가지로 시장이 충분히 성숙되지 않았는데 너무 앞서 나왔던 탓이다.
파일세이프와 쿨메신저를 통해 오 대표는 아이디어와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시장을 움직이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비자들은 필요에 따라 오갈 뿐 억지로 잡아끈다고 따라오지 않는다. 시장의 오묘한 이치를 깨달아가는 것은 그에게 또 다른 즐거움이다.
회사가 커지면서 오 대표는 개발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처음에는 개발과 영업을 함께 했지만 이제는 회사의 큰 그림을 그리는 데 매달려 있다.
그는 우리나라 벤처의 성장 과정을 3단계로 꼽는다. 밥 먹고사는 게 1단계라면 국내에서 점유율을 웬만큼 차지하면서 선두 그룹에 끼는 게 2단계다. 마지막 3단계는 해외 진출이다. 지란지교소프트는 2단계를 지나 이제 막 3단계에 들어설 채비를 마쳤다.
"우리나라는 어정쩡합니다. 대만처럼 내수 시장이 작으면 처음부터 글로벌 마케팅을 할 것이고, 미국이나 일본처럼 내수 시장이 크면 해외 진출을 고민하지 않아도 될 텐데……. 이도 저도 아니니 국내에서 시장 점유율 1위를 해도 해외 진출을 노리지 않으면 안 되는 고민에 빠집니다. 그러나 이런 태생적 한계를 되도록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내수 시장에서 충분히 워밍업을 한 다음에 해외 진출을 할 수 있잖아요."
그가 노리는 해외 진출의 1번지는 일본이다. 중국과 미국도 눈여겨봤지만 일본이 가장 나은 조건을 갖췄다. 경기가 빠르게 회복되는 중인데다 한류 열풍으로 한국 상품에 대한 호감도가 좋아서다.
100년 전통을 향해
일본 진출에 성공하면 중국과 미국 등으로 눈을 돌릴 계획이다. 궁극적으로는 2014년까지 세계 100대 소프트웨어 회사가 되는 게 꿈이다. 이를 위해서는 회사의 정체성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
스팸스나이퍼와 쿨메신저 등 지란지교소프트의 상품은 한결같이 '네트워크'와 '보안', '업무'라는 주제를 꿰고 있다. 하지만 초점이 흐리다는 지적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하면 운영체제, 인텔 하면 CPU가 떠오르듯 핵심 키워드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얘기다. 그는 생각이 좀 다르다.
"리니지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는 엔씨소프트가 그룹웨어로 시작했다는 것을 누가 알까요? 안철수연구소는 요즘 통합 보안 회사로 나아가려 하지만 백신에 대한 이미지가 워낙 강해 오히려 손해를 볼 때도 있습니다. 정체성이 너무 강한 게 꼭 좋다고 볼 수 없습니다. 유연하게 시장의 흐름을 따라가는 게 저의 전략입니다."
오 대표는 실패도 좌절도 모두 끌어안은 채 척박한 국내 시장에서 10년을 그렇게 달려왔다. 100년 전통의 뿌리 깊은 회사를 향해 이제 겨우 몇 발짝 떼었을 뿐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지만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 그에게 소프트웨어는 희망이기 때문이다.
ⓒ2004 월간 PC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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