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논산 출신 김민성씨(대전고 69회), 세계 3대 악기제작 콩쿠르 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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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65 방순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4,169회 작성일 2010-06-17 17:04본문
‘이번에는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을까?’ 지난달 17일 중국 베이징. 제1회 중국국제현악기제작대회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김민성(40) 씨에게 그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고향 충남 논산에서의 어린 시절 추억과 충남대 재학 중 악기제작가의 길을 걷기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순간들…. 눈을 감고 회상하던 김 씨에게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첼로부문 금메달에 김민성(Kim min sung), 축하합니다.” 세계 최고의 현악기 명장이 되기 위해 16년 동안 손에 굳은살 박이도록 악기제작에 전념했던 김 씨에게 생애 첫 번째 금메달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출품된 300여 대 가까운 악기 중 가장 소리가 좋은 악기에 주어지는 ‘베스트사운드상’(Best Sound)과 ‘베스트세트업상’(Best Set Up)도 함께 수상하면서 현지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 연속으로 6월 초 열린 독일에서 열린 제6회 미텐발트(Mittenwald) 국제현악기대회에서 첼로 부문 은메달과 완성도 높은 악기에 수여되는 ‘베스트워크맨십상’(Best Workmanship)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김 씨는 수상 후 가진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번 대회에 입상하면서 세계 3대 콩쿠르를 모두 석권해 의미가 크다”며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좋은 소리가 날 수 있는 악기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됐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현악기 명장이 모인다는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 현악기 제작가로 활동 중인 그는 현지 언론과 많은 마에스트로부터 극찬을 받는 재원으로 꼽힌다.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대전고(69회)와 충남대를 거친, 태생적인 충청도인이기도 하다. 충남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던 그가 미국으로 훌쩍 유학을 떠난 것은 왜일까? “대학 2학년 때 입대를 했고, 군 복무를 마칠 무렵 미래에 대한 고민이 생기더군요. 오랜 고민 끝에 악기제작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이왕 시작하려면 더 큰 무대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추자는 포부를 가졌지요. 아마 당시 서울에서 ‘월드 악기’라는 현악기사를 운영하던 형의 영향이 컸다고 봅니다. 물론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남달라 이것저것 만드는 것도 좋아했고요.(웃음) 그때의 결심이 인생을 180도로 바꿨고,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맨주먹으로 미국땅을 밟은 그에게 그곳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영어 초보였던지라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가 벅찼고,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아 저녁을 빵 한 조각으로 때운 적도 많았다. 학비 때문에 새벽까지 일해 하루 4시간 자면 많이 자는 정도였다. 하지만, 대학시절 물리학을 전공한 것은 악기제작에 큰 도움이 됐다. 악기 제작에 중요한 음향학은 물론, 물리학적인 사고방식이 기반이 된 그에게 ‘악기제작’ 공부는 즐겁기만 했다. 습자지에 먹물 베이듯 이론 공부에 매달렸고, 매일같이 손이 부르트도록 수많은 악기를 만졌다. 그런 그의 노력은 미국 유학 12년 만에 빛을 봤다. 지난 2006년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 열린 제11회 트리엔날레 국제 악기 콩쿨에서 한국인 최초로 수상의 영예를 안은 것이다. 세계 최고의 권위를 지닌 대회라 주위의 반응은 그저 ‘놀랍다’ 였다. 악기제작가에게 꿈의 무대로, 이전까지 한국인 악기제작가는 입상은 커녕 결승에 오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악기제작학교를 졸업한지 얼마 안 된 터라 선생님 등 주변에서는 규모가 작은 콩쿨에 먼저 나가보고 경험을 쌓은 뒤 도전하라고 조언하더군요. 하지만 큰 무대에서 최고의 악기제작자에게 한 수 배워보겠다는 마음으로 처녀 출품을 했습니다. 총 2대의 첼로를 선보였고 각각 동메달과 6위라는 놀라운 결과를 내게 된겁니다.” 이후 매년 주요 콩쿨에서 상을 놓치지 않았던 그는 이탈리아 트리엔날레, 미국 VSA콩쿨, 그리고 이번 수상으로 세계 3대 콩쿨을 석권했다. 젊은 나이에 세계적인 악기 명장으로 떠오른 것이다.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낸 그이지만 잠시라도 여유를 갖지 않는다. 올해 11월에 열릴 미국 VSA콩쿨에서 금메달의 성적을 내기위해 곧바로 작업실로 돌아와 옹이박힌 손으로 작품제작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마지막으로 더 많은 한국 악기제작가가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길 기대했다. “지금 이순간에도 세계 각지에서 많은 한국인이 악기제작가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고, 활동 중인 사람도 많습니다. 이곳에서는 높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외면을 받는게 현실입니다. 잘 만들어진 악기가 외면받는 것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많은 연주자가 우리 한국 제작가가 만든 악기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사랑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효숙 기자 press1218@daejonilbo.com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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